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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History/정치사회

조선총독부 폭파 이유: 김영삼 대통령 역사 바로 세우기 프로젝트

김영삼 대통령(임기: 1993~1998.2월)은 대한민국 제14대 대통령으로 민주화 이후 첫 문민정부를 이끈 인물이다. 김영삼 대통령은 부패 척결과 경제 개혁을 추진했고, 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사태등 중요한 시기를 거쳤다. 역사바로세우기 프로젝트는 김영삼 대통령이 추진한 중요한 개혁 정책 중 하나로 주요 목표는 한국의 현대사에서 왜곡되거나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고 역사적 진실을 회복하는 것이었다. 이중에 조선총독부 폭파사건은 한국 역사에서 중요한 상징적인 사건 중 하나였다.

 

 

 

조선총독부 건물은 1910년 ~1945년까지 일제 강점기 동안 일본 제국의 한국 통치 본부였던 건물로 서울 경복궁 앞에 위치해 있었으며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한국이 독립한 후에도 이 건물은 미군정 사령부- 중앙청- 국회의사당 -국립중앙박물관등 여러 행정 용도로 사용되었지만 그 상징성때문에 논란이 많았다. 조선총독부 폭파 프로젝트를 결심한 계기는 여러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는데 주요 요인 중 하나는 일본의 망언이었다. 특히 일본 고위 관료들의 망언들이 큰 영향을 미쳤다. 

 

옛 조선총독부 지하에는 고문실도 있었다.


일본의 망언

당시 일본의 고위 정치인들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의 행위를 정당화하거나 축소하려는 발언을 자주 했는데 이러한 발언들은 한국 국민들에게 큰 분노를 일으켰고, 김영삼 대통령에게 역사바로세우기 프로젝트를 강력하게 추진하도록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일본은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하려는 김영삼 대통령의 계획에 대해 "우리가 지은 건물이니 우리가 통째로 이전해 가겠다"고 하며 철거를 막으려 했지만, 이는 오히려 김영삼 대통령의 결심을 더욱 굳히는 결과를 낳았다. 

 

당시 일본 총리들은 일본이 한국을 통치한 적은 있으나 식민지배는 아니었다. 위안부는 군사적으로 필요했다. 강제적으로 징용한 것이 아닌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등등.. 망언을 이어나갔다. 

 

**조선 총독부 폭파, 철거와 광화문 역사 이야기

 

조선 총독부 폭파, 철거와 광화문 역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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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바로세우기 프로젝트 

김영삼 대통령은 1995년 광복 50주년을 기념하여 8월 15일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하고 경복궁을 복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일제 강점기의 잔재를 청산하고 민족의 자존심과 정기를 회복하기 위한 상징적인 조치였다. 김영삼 대통령은 "치욕의 역사를 지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철거를 강행했다. 이로 인해 그의 지지율은 크게 상승하였고, 국민들의 많은 지지를 받았다. 

결론적으로, 김영삼 대통령의 역사바로세우기 프로젝트는 일본의 망언과 그에 대한 한국 국민들의 분노에 대응하여, 민족의 자존심을 회복하고 역사적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한 중요한 움직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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