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유물이 해외에 훨씬 더 많은 이유 특히 루브르 박물관이나 대영박물관에는 이집트 유물이 이집트 현재 보다 더 많다. 많은 이집트 유물이 도굴되어 다른 나라로 반출되었고 이집트 유물을 통째로 가져간 사례도 많은데 그 중에 통째로 가져간 유물 중 대표적인 것이 오벨리스크이다. 프랑스 콩코드 광장에 오벨리스크를 볼수 있다.
도굴은 아니지만 오벨리스크는 이집트 신전 앞에 세워두는 일종의 표지석으로 피라미드 모양의 첨탑을 가진 단석체 조형물이다. 이집트 모하메드 알리 총도근 강대국과의 외교를 위해 영국과 프랑스에 오벨리스크를 선물했다. 문제는 오벨리스크의 이동이었다.
오벨리스크는 단석체로 한개의 큰 돌덩어리를 훼손하지 않고 옮기는 것이 관건이었다. 약 3년간 전용 선박과 운반 기계를 제작해 기계를 이용해 오벨리스크를 수평으로 눕혔다. 이때 약 200명의 인부가 동원되었고 약 400m 떨어진 선박까지 이동하는데만 몇 주가 소요되기도 했다. 배를 띄우기 위해서는 강한 바람과 나일강의 수위가 최대치가 되어야 했기때문에 오벨리스크를 실은 배는 출항 준비까지 약 8개월이 더 걸렸다. 그렇게 약 7년이라는 세월 동안 노력한 끝에 파리 콩코드 광장에 23m의 오벨리스크가 세워졌다.
역사적인 이 장면을 보기 위해 프랑스 시민 20만명이 콩코르드 광장에 모여들었고 오벨리스크가 세워지자 프랑스 시민들은 환호와 박수를 치며 좋아했고 프랑스 황제 루이 필립 1세는 보답의 의미로 카이로성채 장식용 시계를 이집트에 선물했다.
영국의 오벨리스크
이 시계는 아름답고 화려하지만 이집트로 가면서 멈췄는데 현재도 작동하지 않는다. 영국은 프랑스보다 50여 년 늦게 오벨리스크를 옮기기 시작했다. 오벨리스크를 선박에 실었는데 폭풍우를 만나 조난당해 버린다. 이때 조난자들을 구조하기 위한 배를 보냈는데 그러나 구조하러 온 사람들마저 그대로 익사했다. 결국 운반에 성공했지만 수많은 인명 피해를 가져왔다.
오벨리스크 운반으로 영국과 프랑스는 자신들의 위대함을 과시하기 위해 아주 잘 보이는 위치에 오벨리스크를 설치한다. 영국은 템스강 연안에 프랑스는 콩코르드 광장에 장식을 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 이집트의 21개 오벨리스크 중 이집트에 남은 것은 단 4개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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