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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History

용비어천가 6용은 누구? 준경묘 백우금관의 전설

용비어천가 6용 

용비어천가 1장 1절에는 해동 육룡이 나라샤 일마다 천복이시니 동쪽 바다에 여섯 용이 나타나니 하는 일마다 하늘이 돕는다는 내용으로 조선왕조의 탄생을 찬미하는 가사가 적혀있다. 

 

용비어천가 / 6마리 용 

 

6 마리 용은 목조: 이안사, 익조: 이행리, 도조: 이춘, 환조:이자춘, 태조:이성계, 태종:이방원인데 이 6마리 용 , 전주이씨 가문의 가장 큰 아버지 이양무의 무덤이 삼척 준경묘이다. 

 

준경묘 위치

 

준경묘 가는길
준경묘
준경묘 자리는 명당

 

준경묘는 오후 3시만 되도 무덤에 그늘이 질정도로 깊은 산중에 위치해 있다. 조선 왕조의 태동을 예언한 백우금관의 전설이 있는 장소로 조선 태조 이성계의 5대조 이양무의 묘가 있는 곳으로 조선 최고의 명당이라 여겨지는 곳이었다. 

 

백우금관의 전설

전주에서 무관으로 일하던 이안사는 전주로 부임한 산성별감과 기생하나를 사이에 두고 다툼이 벌어진다. 목숨이 위험하다고 느낀 이안사는 170여 가구를 이끌고 자신의 외가가 있는 삼척으로 이사오게 되지만 1년만에 아버지 이양무가 죽는다. 집이 가난해서 장례 치를 궁리조차 못하던 이안사는 어떤 언덕에서 걱정하고 있었는데 마침 도승 한명이 동자승과 함께 와서 쉬고 있었다. 그러더니 도승 왈 

 

" 이 언덕에 소 일백 마리를 잡고 황금으로 관을 짜서 장례를 치르면 5대손 안에 왕이 나올 땅이로구나 , 명당이로구나 "

 

하더니 사라져 버렸다. 이 말을 엿들은 이안사는 자신의 집이 가난하니 일백 백자가 아닌 (= 소 백마리가 아닌 ) 흰소 한마리와 황금이 없으니 황금처럼 누런 귀리로 짚을 만들어 관으로 사용하여 아버지 이양무의 장례를 치렀다. 그리고 정말로 5세 후에 이안사의 4대손 이성계가 조선을 창업했다. 조선왕조의 정통성을 부여하는 준경묘이다. 

 

그래서 이성계는 묘를 찾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다. 이 묘를 찾아야만 하늘이 예정한 왕조라는 것을 증명할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세종때 이 묘를 찾아내지만 증거가 없어 세월을 보내다가 1898년 고종 때 이르러 조상 묘라는 걸 확정하게 된다. 그리고 정확하게 11년 뒤 1910년 조선은 망하고 사라져 버렸다.

 

 

금강송

준경묘를 지키는 거대한 금강송을 볼수 있는데 조선 세조 임금이 충북 보은에 있는 속리산을 지나갈때 임금이 타고 있던 가마가 어떤 소나무에 걸리려고 할때 갑자기 소나무가 가지를 들어서 가마를 지나가게 만들었다. 그래서 임금님의 가마를 지나가게 해 준 공로로 정이품의 벼슬을 받은 소나무가 정이품송이다. 

 

 

세월이 흘러 준경묘의 금강송과 정이품소나무가 결혼식을 올린다. 정이품송이 신랑, 준경묘의 소나무가 신부이다. 준경묘 숲에 있는 소나무들은 아름드리 낙락장송입니다. 

낙락장송

 

2008년 2월 10일 숭례문 화재로 숭례문 복원사업을 하게 되면서 이곳에 있던 금강송 20그루를 벌채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