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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History/벌거벗은 세계사

싱가포르 어떻게 독립국가가 되었나? (싱가포르 국기 의미/건국 아버지 리콴유 )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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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 아버지 리콴유 

1959년 영국은 싱가포르의 요구에 따라 자치 정부를 수립한다.  1959년 6월 싱가포르는 의원내각제 기반의 최초의 보통 선거를 실시했고 이 선거에서 훗날 싱가포르 건국의 아버지 초대 총리 리콴유가 당선된다. 

 



리콴유는 화교 4세 출신으로 엘리트 계층을 중심으로 한 인민행동당을 만들어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리콴유는 싱가포르가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영국의 식민시절에 모여들었던 다인종간의 화합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싱가포르를 교역 중심에서 산업 사회로의 변화를 꾀해야 한다고 공약한다. 이 공약으로 리콴유는 싱가포르 집권 여당 및 싱가포르 초대 총리로 당선된 것이다. 

 

말레이시아 연방 수립의 문제점 

그러나 이후 바로 냉전시기로 접어들면서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출범하자 당시 인구의 75%가 화교인 싱가포르에서 빠르게 사회주의 세력이 늘어났고 미국의 동맹국인 영국 입장에서는 싱가포르의 사회화를 우려해 1963년 말레이시아 연방을 수립한다. 

 

말레이시아 연방 수립

 

그러나 싱가포르 리콴유 총리의 기대와는 달리 말레이 반도의 라만 총리는 싱가포르와의 공동시장(경제적 국경을 철페하고 국가간 무역, 노동 등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한 경제 통합 형태) 조약을 무시했고 또한 말레인 우대 정책을 펼쳤고 주요 정책을 말레인을 중심으로 중앙집권화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주요 정치 무대를 말레이인이 독점하고 교육, 주거 , 고용에서 말레이인을 위한 정책을 시행했던 것이다.  사실 싱가포르 내에서도 이러한 갈등은 있어왔는데 말레인들은 정체세력을 가지고 있었고 화교들은 경제를 독점했기에 고용에서 말레이인을 배제하는 두 인종의 갈등이 있었다.  연방 수립 후 두 인종의 갈등은 점점 깊어져갔다. 

 

싱가포르 연방 탈퇴 

그러던 어느 날 싱가포르 내 말레이인과 화교가 크게 충돌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1964년 7월 21일 이슬람교 창시자 무함마드 탄신일을 맞아 싱가포르 내에서 말레이인들이 행진 도중 화교와 말레이인의 작은 충돌이 벌어졌고 이것이 대규모 폭력사태로 확대되면서 이 사건으로 싱가포르인 23명이 사망하고 454명이 부상을 당하게 된다. 하지만 민족간의 갈등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이 사건 6주 뒤 말레이인과 화교간에 다시 한번 충돌이 벌어지면서 13명의 사망자와 20명의 부상자가 생긴 것이다.  그러자 연방내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의 갈등이 깊어지기 시작하면서 결국  말레이시아 라만 총리는 일방적으로 싱가포르와의 연방 분리를 통보했고 통보 이틀 뒤 연방 탈퇴를 발표해 버렸다. 이렇게 말레이시아 연방에서 쫓겨난 싱가포르는 독립국가로서 홀로서기를 시작하게 된다. 

 

싱가포르 정체성 확립 정책 

이렇게 독립된 싱가포르는 성장이 아닌 생존을 위한 대규모 개혁을 펼치게 된다. 당시 싱가포르의 인구 분포는 화교가 75%, 말레이 15%, 인도 7%, 기타 3%였다. 그렇기 때문에 싱가포르인이라고 하는 하나의 정체성이 절실했다. 이에 리콴유 총리는 대통령으로 화교가 아닌 말레이인인 '유솝 빈 이스학'을 임명하고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해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려고 했다. 

 

싱가포르 인구 분포

 

그렇게 영어는 교육을 통해 싱가포르의 공용어로 자리를 잡았고 영어는 싱가포르인이라는 정체성을 심어주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한 인종 결속을 위해 국기를 새로 제작한다.  중국의 상징 별 다섯 개와 말레이시아 국기의 초승달을 합쳐 싱가포르 국기를 제작했다. 

 

싱가포르 국기

 

싱가포르 부극으로 가기 위한 정책들 

 

무관용 원칙 적용 

이후 국가 성장을 위한 정책을 펼치기 시작한다. 첫번째로 엄격한 무관용 원칙이었다. 리콴유는 독립 이후 부패없는 정부를 만들겠다고 다짐했고 강한 부패 척결 의지로 1960년 부패방지법을 도입해 부패행위조사국을 만들어 부패가 일어났다는 믿을만한 정보나 합리적인 의심이있으면 영장 없이 체포가 가능한 강력한 수사권을 보유, 총리에게 직속으로 보고할수 있었다.  뇌물 수수를 방지하기 위해 공무원을 연금을 대폭 인상시켰다. 이런 리콴유의 정신은 지금까지도 이어져서 공무원 연봉은 싱가포르 상위 5%에 속한다. 장관. 대법관 연봉은 약 10억, 총리 연봉은 약 20억 (세계 1위) 이다. 그 결과 싱가포르는 2023년 세계 국가청렴도 순위에서 세계 5위 아시아 1위를 달성하게 된다. 

 

또 다른 무관용의 원칙 중의 하나가 벌금의 도시답게 쓰레기 버리기 금지, 껌 씹기 금지, 흡연 금지, 침 뱉기 금지, 비둘기 모이 주기 금지, 대중교통에서 물마시기 금지, 한 손 운전금지, 타인의 와이파이 사용 금지 등이 있고 이를 어길 시 최소 약 50만원~2000만원 정도의 벌금을 부과 또는 징역형을 한다. 싱가포르는 외국인을 대상으로도 예외 없이 법을 집행한다. 싱가포르는 강대국의 요청에도 예외없이 법을 집행하는 것으로도 유명해 이후 안전한 사업 환경이라는 이미지를 갖게 된다. 

 

싱가포르 교육 시스템 

싱가포르는 교육의 기회는 동등하나 그중 엘리트만을 걸러내는 시스템이 존재한다.  싱가포르는 초등학교 약 186개, 중학교 약 136개, 고등학교 22개로 상급 학교로 갈수록 학교 수가 적어져서 성적이 낮은 학생은 직업훈련원에서 기술을 습득하게 되고 반면 고교 과정까지 수료 시 엘리트 코스를 걷게 된다.  그래서 싱가포르 시스템에서는 대학 입학이 곧 엘리트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파격적인 세금 정책 

리콴유 총리는 싱가포르는 자원, 자본, 기술 부족을 딛고 일자리와 경제 성장을 꾀하기 위해서는 해외 자본과 다국적 기업을 끌어들여야 한다고 생각해 외국 자본이 들어 올수 있도록  싱가포르 내 공업단지를 조성, 금융지원을 하는 등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형태의 정책을 펼치면서 수출 법인세를 40%-> 4%로 낮춘다. 이 세금 정책의 효과로 엄청난 해외 자본을 끌어들이게 되고 싱가포르 제조 기업의 1/4이 외국계 기업 & 합작투자 회사가 들어오게 된다.  제조업의 성행으로 무역업도 성행하게 된다. 싱가포르는 세계적인 환적 센터로 선박들이 목적지로 가는 중에 들러서 다른 선박으로 화물을 옮겨 싣는 장소가 된 것이다. 

 

무역업을 위한 간척지 사업들 

1981년 싱가포르 간척지에 세운 창이국제공항은 5년 만에 화물량 30만 콘, 여객 수 1천만의 항공 허브의 세계 최고의 공항이 된다. 또한 100개의 항공사가 주 5천여개의 항공편을 운영하면서 2010년대에는 7년 연속 세계 최고 공항으로 선정된다. 세계 최고 공항을 뽑을 때 인천국제 공항의 라이벌이다.  1965년까지만 해도 싱가포르 영토는 서울보다 작았으나 간척 사업으로 영토 22%까지 확장하면서 지금은 싱가포르 국가는 서울의 1.2배가 되었다. 현재 마리나베이 샌즈 호텔, 세계 1위의 컨테이너 부두 , 주롱 공업단지, 빌딩 숲등 싱가포르의 랜드마크 대부분이 간척지에 세워진 건물들이다.

 

싱가포르는 작은 영토 때문에 쓰레기 매립지가 부족해 세계 최초로 쓰레기 재를 매립해서 바다 위에 간척지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세마카우 섬이다. 

 

세마카우 섬

 

현재 이 섬은 자연 생태공원으로 꾸며져있고 이곳이 아름다운 경치 덕분에 웨딩 촬영지로도 유명한 섬이다. 이렇게 싱가포르는 수자원, 쓰레기 재활용에서 세계 최고 기술력을 가지고 있다. 

 

 

정부 주도형 금융산업 

제조업과 무역업으로 돈이 돌자 정부의 주도 하에 금융업이 발전한다. 1968년 싱가포르는 싱가포르 개발 은행 (DBS)를 설립하고 민간 기업과 협력하면서 새로운 산업에 투자하기 시작한다.  1970년대 후반부터는 외환 거래 자유화를 도입한 세금 정책을 실시 공격적인 해외 금융 기업들의 유치를 실시한다. 이때 전 세계 은행의 지점이 싱가포르에 입점하게 된다. 1984년 싱가포르에 아시아 최초의 금융선물거래소까지 설립되고 이후 세계 유수의 글로벌 대형 금융기관 600여 곳이 싱가포르로 진출했다. 국제 거래의 요충지로 많은 환전이 이루어져 이 과정에서 많은 수수료와 환차익을 벌고 있다. 현재 싱가포르는 세계 4대 금용도시에 포함되어 있다. 

 

또한 싱가포르 은행은 부자들을 대상으로 한 금융 서비스하는데 고액 자산가 맞춤 자산 관리로 큰 수익을 내고 있다. 싱가포르는 상속세를 부과하지 않기 때문에 부자들은 자신의 돈을 지키기 위해 싱가포르로 귀화하는 경우가 많다. 

 

세계 최고 부자 중 최근에 싱가포르로 귀화한 사람들.

 

관광업 활성화 정책들

싱가포르는 정부주도형으로 관광청을 설립해서 <가든스 바이 더 베이> , <싱가포르 동물원> , <보타닉 가든> 등을 관광지로 개발한 결과 전 세계 사람들을 모으고 있다. 또한 국가 주도로 콜드 플레이, 에드 시런, 테일러 스위프트 등의 글로벌 스타 콘서트를 주최해서 몰려든 국제 팬들로 인해 숙박업, 식당가들이 대호황을 이루었고 테일러 스위프트 콘서트 유치 이후 싱가포르 1분기 GDP가 2.7%나 올랐다. 이렇게 싱가포르는 금융업에 이어 관광업도 성공적으로 키워내면서 싱가포르 GDP는 1965년 이후 고도성장을 하며 84,714달러가 되었다. 

 

 

싱가포르는 국가 주도로 기반을 마련하고 각종 산업을 개발하며 놀라운 경제 성장으로 이렇게 아시아의 부극으로 등극했다. 

 

 

 

 

싱가포르 역사 (어떻게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나?)

싱가포르는 서울보다 조금 더 큰 면적의 나라이지만 2023년 1인당 GDP 88.450 달러로 아시아 1위,  세계 5위의 경제 부국으로 뽑히는 나라이다. 또한 외국인이 살기 좋은 나라 5년 연속 세계 1위를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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