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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 세계 최초 주식 ,증권거래소 , 중앙은행 설립.174-3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는 주식회사를 만든 후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많은 이익을 내야했고 이때 동인도 회사가 향한 곳이 유럽에서 돈이 되는 향신료 정향과 육두구가 있는 곳, 인도네시아였다.
말루쿠 제도는 100년 이상 아시아 교역을 독점한 포르투갈의 점령지였고 포르투갈은 향신료 가격을 아주 비싼 가격에 팔았다. 이에 여러나라에 불만이 싸여갔고 당시 여러 식민지를 관리하던 포르투갈은 병력이 분산되어 있었고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와 원주민들을 막을 수 없었고 결국 네덜란드와 말루쿠는 포르투갈을 몰아내는데 성공한다.
네덜란드 원주민 학살
이후 네덜란드는 무역이 아닌 향신료 독점을 위해 1605년 무력을 앞세워 말루쿠 제도 섬을 점령해 나가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반발하는 원주민을 무참히 학살한다. 1621년 네덜란드는 원주민을 학살하기 위해 일본 사무라이 용병을 데려와 학살을 했던 것이다. 140000명의 원주민 중 약 93%가 학살당했고 그 결과 이 섬에 남은 원주민은 480여 명에 불과했다.
네덜란드 영국인 학살
이때 영국도 말루쿠 제도를 탐내고 있었고 이에 네덜란드는 영국인이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를 공격했다는 이유로 영국상인들 잡아 가장 잔혹하게 물고문을 하며 자백을 받아냈다. 이후 영국은 말루크 제도를 떠나 인도로 향했다. 이렇게 1663년 말루크 제도를 점령한 네덜란드의 향신료 독점으로 인해 회사의 수입은 가파르게 올라갔다.
네덜란드는 아시아땅을 차지하기 위해 대만에서도 학살을 했는데 1636년에 대만을 차지하려 했던 동인도 회사는 주민들을 동굴로 쫒아낸 뒤 입구를 봉쇄 후 8일 동안 독가스를 넣어 학살을 했다. 이후 원주민들의 신체를 자른 뒤 전리품으로 전시했다.
네덜란드 황금시대
원주민은 물론 경쟁자까지 학살하며 향신료 독점을 한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는 향신료를 유럽에 비싸게 팔아 큰 이득을 챙겼다. 향신료를 필두로 아시아 교역품들을 유럽 곳곳에 판매하여 엄청난 수입을 올린다. 1730년 네덜란드는 사상 최대 수입을 올리며 해상 강국으로 떠올랐다. 이로 인해 네덜란드에는 새로운 신흥 부자들이 생겨나게 되고 부자들은 도시에 큰 집을 짓고 별장을 짓는게 유행이었다. 네덜란드는 유럽의 가장 부자 나라로 높은 생활 수준을 보였다. 유럽인들은 네더란드르 보며 세상에서 볼수 있는 세계 최대의 부를 목격했다고 했다.
이후 네덜란드는 전 대륙에 걸쳐 식민지를 건설하며 무역 거점을 넓혀 나가기 시작한다. 아프리카 대륙, 인도, 페르시아 , 대만, 일본 등과 같은 아시아 대륙까지 진출했고 세계 곳곳에 수십곳에 무역을 관장하는 상관을 설치했다.
이때 아프리카, 아시아, 아메리카 대륙과의 무역 거래를 통해 네덜란드 무역 거래의 총액이 세계 무역의 절반을 차지하는 경제 대국으로 성장한다. 부의 기반을 만든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는 현재 기준 약 1경 원 이상의 시가 총액을 가진다.
영국의 견제
이렇게 승승장구하던 네덜란드에 불만을 품은 영국은 네덜란드 자리를 빼앗기 위해 1651년 영국은 영국에 입항하는 모든 배는 영국배여야한다는 항해 조례를 공표한다.
영란전쟁 발발
결국 네덜란드는 1652년 영국과의 전쟁을 선포한다. 1차 영란전쟁은 2년간 지속되었고 결국 영국이 승리로 끝이 났다. 1665년 2차 영란전쟁이 발발 약 3년간 이어진 전투로 1667년 네덜란드가 승리하며 영국의 식민지 중 남아메리카의 수리남 지역을 획득하며 네덜란드에 유리한 조약을 체결하게 된다.
그러나 네덜란드도 조약에 따라 영국에 자신의 땅을 내어주었다. 그 땅은 1624년 네덜란드가 이곳을 발견하고 뉴암스테르담이라 불렀고 당시 무피 무역을 하는 것이 전부였고 그에 반해 비싼 설탕을 만들 수 있는 사탕수수 농장의 중심지였던 수리남을 선택한 것이다. 네덜란드가 내어준 땅이 지금의 뉴욕의 맨하튼이다. 영국은 네덜란드에 받은 뉴 암스테르담에 '뉴욕'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1672년 제 3차 영란 전쟁이 발발한다. 이 전쟁에는 영국과 네덜란드 외에 당시 네덜란드를 견제하던 루이 14세 프랑스까지 영국 편에서 참전하게 된다. 이로 인해 네덜란드는 패배하게 된다.
더치페이 유래
그리고 1780~1784년 제 4차 영란전쟁이 발발 네덜란드가 영국 통치에 대항하는 미국의 독립전쟁을 지지했다는 이유였다. 이 전쟁은 네덜란드에 치명적인 피해를 주게 된다. 그 동안 누려왔던 해상 강국의 자리를 영국에 내어주게 된 것이다. 제 4차 영란전쟁 패배의 여파로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는 무역 상권까지 빼앗기며 큰 타격을 입고 1799년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는 파산하게 된다.
이때 생긴 문화가 '더치페이' 인데 영국과 네덜란드 사이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계산적인 네덜란드인들을 비꼬는 데서 유래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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