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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History/문화예술

붉은 악마 , 귀면와에 그려진 모습은 무엇? 염제 신농과 황제의 싸움 우리의 붉은 악마의 모습과 신라 시대 기와 속 귀신의 모습을 한 것을 많이 새겨 넣었는데 이는 동양의 신화에 등장하는 모습이다. 동양의 남신 중에 염제 신농이라는 농업의 신이자 불의 신, 의약의 신이 있는데 인간에게 약초를 알려주기 위해 직접 모든 풀을 먹어보고 사람에게 가르쳐주는 신이다. 고구려 벽화에도 자주 등장하는 염제 신농이다.   또 다른 강력한 신, 황제라는 신이 있었다. 임금 황제와는 한자가 다르다. 황제는 용의 반인반수 물의 신으로 염제 신농을 몰아내고 최고의 신 자리에 등극한다. 황제가 최고의 신으로 등극한 것은 백택이라는 동물 덕분이었다.  이 백택은 이 세상의 모든 귀신과 요괴들을 통달하고 있었고 황제의 부하로써 황제를 최고의 신으로 등극하도록 돕는다.   불.. 더보기
박수근 대표작들: 빨래터 , 나무와 두 여인 읽기 박수근 화백 빨래터 박수근 화백의 단골 그림소개 중 하나가 빨래터이다. 그 시절은 근처의 개울에 모여 빨래하던 시절로 마을 사람들의 만남의 장소로 소박한 군상을 그리기에 최적화된 장소이다. 박수근의 빨래터 배경 작품은 대부분 1950년 이후의 작품들이다. 박수근 화백 러브스토리 빨래터는 박수근 화백이 좋아하는 장소이기도 하지만 자신이 사랑했던 평생의 반려자를 만난 장소이기도 하다. 빨래터에 있는 어머니에게 점심을 드리러 가던 중 빨래하던 소녀 김복순과 마주했고 첫 눈에 반해 결혼하겠다고 결심했다. 당시 박수근 화백의 아버지가 재혼을 하셔서 춘천에서 금성으로 와서 살게 되었는데 이때 윗집에 김복순이 살았고 부유한 가정이었다. 반면에 박수근은 비교적 가난했던 아랫집 청년이었다. 이에 김복순의 아버지는 이 둘.. 더보기
안견 몽유도원도 안견은 조선시대 그림을 담당하던 도화원 관청의 화원으로 일을 했다. 그림을 너무 잘 그려서 조선 건국 이래 화원 최초 정 4품까지 전례없는 파격 승진을 했던 인물이다. 산수화로는 당대 화가중 견줄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그의 화풍이 일본에까지 유행할 정도로 영향력 있던 인물이 안견이다. 더보기
이중섭 화가 작품읽기, 해석: 아이 그림이 많은 이유, 러브스토리 MoMa 에 전시된 이중섭 그림 3개는? 이중섭은 국내에서만 유명한 것이 아니라 전 세계를 매료시킨 화가로 20세기 한국 화가 중 최초로 뉴욕 현대미술관 (MOMA)에 작품 3점이 전시되어 있는 화가이다. 미국 공보원장 아더 맥타가트가 이중섭 화가의 팬으로 개인 경매에서 구입후 뉴욕 현대 미술관에 기증을 하면서 이중섭 화가의 작품이 등록되게 된 것이다. 이건희 컬렉션에서도 1488점 중 104점이 이중섭 작품일 만큼 이건희 회장도 자랑했던 화가이다. 이중섭 화가가 제주도도 온 이유 1952년 6.25 전쟁 중 제주도로 피난 온 이중섭은 1년여정도의 제주도 생활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일 것이라 추측한다. 제주도 자구리 공원에는 이중섭 화가와 아내가 함께 매일 산책했던 산책로를 만들어 놨다. .. 더보기
이중섭 흰소 , 황소 그림을 많이 그린 이유 이중섭 소를 많이 그린 이유 이중섭 화가는 오산 고등보틍학교를 들어가 임용련 미술 선생님을 만났고 이것이 그의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그는 가장 조선인 다운모습으로 조선인의 모습을 그려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이중섭이 선택한 그림이 바로 소였다. 이중섭 화가가 생각하기에 가장 조선의 이미지를 가장 잘 표현한 것이 소라고 생각했다. 일제강점기에 아무리 힘들어도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해나가는 소의 이미지가 긍지를 잃지 않고 투쟁의 의지를 불태운 조선인의 의지를 담아낸 것이 소 그림이다. 1940년대 이중섭 작품 1940년 대 이중섭 작품은 대부분 전쟁으로 인해 소실되고 불타버렸다. 사람들은 이중섭 화가는 자신의 감정을 가장 작품에 잘 담아서 그린 화가 중 한명이라고 말한다. 1953년에 그린 황소와 1956년 .. 더보기
시인 백석 이야기 백석은 후대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시인중 한 명으로 윤동주 시인이 가장 좋아했던 시인이고 당대 최고의 모던보이였고 민족주의적이고 향토적인 모더니즘 문학의 대명사였다. 백석의 키는 190cm 정도 되었다. 백석이 광화문 거리에 나타나면 파리의 몽파르나스 거리 같다고 착각할 정도였다. 백석 유년시절 백석의 고향은 평안북도 정주 출신으로 우리나라 근대문학 초기엔 평안북도 문인들이 대부분이었다. 남강 이승훈 선생이 오산학교(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민족교육의 산실과도 같은 곳으로 3.1 운동 때는 학생과 교사가 단체로 참여할 정도였다 백석 선생의 6년 선배가 김소월 시인이다. 보통 당시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부분 일본으로 유학을 많이갔다. 이유는 조선에는 대학이 없었기 때문이다. 백석은 부유한 가정이 아니여서.. 더보기
겸재 정선 인왕제색도 `진경 산수화의 대가 겸재 정선이라고 불리는데 진경 산수화란 본바탕을 가장 잘 나타낸 참다운 경치라라는 뜻으로 자신의 본 것을 느낌 그대로 잘 나타낸 산수화를 말한다. 실제 풍경을 본 뒤에 그림을 그릴 때 강조하고 싶은 부분에 집중하면서 과감하게 삭제할 부분은 삭제하면서 그림 속에 자신의 철학, 사상등 자연이 갖고 있는 본질적 아름다움을 녹여낸 감정을 그린다. 인왕제색도 의미 인왕: 인왕산 제: 비가 개다 색 : 기색& 빛깔 인왕산의 비 개인 경치를 그린 그림이다. 겸재 정선의 가장 친한 친구 이병연이 그림을 그린 날짜로부터 사흘 후 세상을 떠났다. 아프다는 소식에 치유를 바라며 그림을 그린게 아닐까 추측을 해본다. 인왕산의 비가 개인 것처럼 내 친구의 병마도 사라지길 .... 이병연 선생이 여행 다니는.. 더보기
오원 장승업 /혜원 신윤복 그림 읽기 오원 장승업은 화려한 색채, 생동감있는 화풍의 대가였다. 자유분방하고 호방한 성격으로 유명했으며 자신만의 화풍을 만들었던 화가이다. 장승업은 술만 주면 그림을 그렸다는 일화도 있다.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역관 이응헌 집에 기식하며 그림을 그린 장승업이다. 뛰어난 실력으로 유명세를 떨쳤다. 타고난 관찰력과 놀라운 기억력을 바탕으로 동.식물의 특징을 정밀하고 세심하게 표현하며 생명력이 느껴지는 호방한 필치로 큰 인기를 끌었던 화가이다. 장승업의 재주를 좋아한 고종은 그를 궁으로 들여 그림을 그리게 했으나 장승업는 술없이는 그림을 그리기 쉽지 않았다. 그래서 매일 도망을 치곤했다. 장승업의 든든한 후원자로 민영환이 있는데 그래도 얽매이는 삶을 선택하지 않는다. 이 는 러시아에서 발견이 된 작품으로 127년 만.. 더보기
도자기 이름 짓는 법 도자기 이름을 보면 복잡하지만 나름의 법칙이 있다. 이름에 숨겨진 도자기 정보를 알아보자. 시대 (만들어진 시기)- 고려, 조선 등 종류 (흙의 종류)- 백자토, 청자토, 분청토 장식 기법: - 양각, 음각, 투각, 상감, 조화, 인화, 박지, 귀얄, 덤벙, 철화, 진사, 청화 문양 (그려진 무늬)- 모란문, 초화문, 운학문,국화문, 당초문, 쌍학문 등 형태 병,완(사발), 합,잔, 대접, 주자(술주전자), 편병(양면이 납작하고 편편하게 생긴 병) , 침 (베개) 더보기
달항아리 제작법, 특징은? 예전에 영국런던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뮤지엄에 달항아리를 전시한 적이 있다. 이때 영국 대표 배우 007 영화의 여왕역을 맡았던 주디 덴치가 전시품 중 하나만 소장한다면 선택한 것이 바로 달항아리라고 말했다. 달항아리는 언제부터? 조선 중후기 임진왜란 병자호란 이후에 도자기 산업이 침제된다. 그런데 17세기 후반 일본과 중국에서 찾기 힘든 달항아리가 등장한다. 굉장히 크고 둥근 백자가 등장한 것이다. 달항아리 제작방법 이런 큰크기로 인해 달항아리는 고유한 전통 기법을 이용해 절반씩 만든다. 위아래 절반씩 만들기 때문에 이어 붙이는 독특한 제작법이다. 절반씩 만들기 때문에 항아리 모양이 모두 다르다. 달항아리 매력 달항아리는 심플함이 매력으로 계속 바라보게 되는 매력이 있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성화..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