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0년대 조선 한복판, 정동에는 이국적인 분위기의 서양식 건물이 하나 세워졌다. 당시 조선에서는 보기 드문 벽돌로 지어진 이 건물은 바로 ‘손탁호텔’이었다. 조선에서 최초로 개관한 서양식 호텔이었으며, 외교 사절과 고위층 인사들이 모이는 장소로 각광받았다. 그런데 이 호텔을 만든 사람은 조선인이 아닌 한 외국 여성이었다. 그녀의 이름은 앙투아네트 손탁(Antoinette Sontag). 프랑스계 독일인이었던 그녀는 조선에서 서양 문화를 전파하고, 개화기 외교의 중심에 선 인물이었다.
손탁은 누구인가?
손탁은 프랑스계 독일인으로, 러시아어,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조선어까지 5개 국어에 능통한 인물이었다. 1885년, 초대 러시아 공사와 함께 조선에 입국하면서 고종과 인연을 맺었다. 그녀는 러시아 외교관들과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조선 왕실과 서양 외교계 사이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특히 고종의 깊은 신임을 받아 왕실에서 중대한 외교 문제를 논의할 때도 그녀가 종종 조언을 했다고 전해진다.
고종은 그녀의 노고를 인정해 서울 정동에 있는 방 5개짜리 벽돌 건물 한 채를 하사했다. 손탁은 이 건물을 게스트하우스로 개조해 ‘손탁빈관(손탁 게스트하우스)’을 운영했는데, 외국인 거주자가 점점 늘어나자 더 큰 숙박시설이 필요해졌다. 그래서 손탁은 영빈관을 다시 개축하여 **‘손탁호텔’(1900년 개관)**을 설립했다.
손탁호텔, 한성 최고의 호텔이 되다
손탁호텔은 당시 조선에서 가장 고급스럽고 세련된 호텔이었다.
- 1층은 일반 객실,
- 2층은 귀빈실,
- 전체 객실은 약 30개 규모로 당시 한성에서 가장 크고 주목받는 호텔이었다.
이곳은 단순한 숙박시설이 아니라, 외교 사절과 서양인들이 모이는 사교장 역할도 했다. 특히 손탁은 서양식 연회를 총괄하며, 유럽식 만찬을 준비하는 등 서구 문화를 조선에 소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손탁호텔과 세계적인 인물들
손탁호텔은 외국 언론인들과 종군 기자들의 숙소로도 유명했다.
- 윈스턴 처칠(훗날 영국 총리)도 젊은 시절 종군 기자로 조선을 방문하며 이곳에 머물렀다고 전해진다.
- 마크 트웨인(《톰 소여의 모험》 저자) 또한 종군 기자로 활동하며 조선에 왔고, 손탁호텔의 분위기와 커피 맛을 높이 평가했다고 한다.
특히 손탁호텔은 조선에서 처음으로 커피를 판매한 장소 중 하나였다. 당시 조선인들에게 커피는 생소한 음료였지만, 서양 외교관들과 개화파 인사들이 커피 문화를 접하면서 서서히 퍼져 나갔다.
손탁호텔의 쇠퇴와 손탁의 마지막
손탁호텔은 1900년대 초반까지 명성을 이어갔지만, 1905년 을사늑약 이후 일본의 영향력이 강해지면서 입지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대한제국이 외교적 자주권을 잃자 외국 외교관들의 활동이 줄어들었고, 손탁호텔도 자연스럽게 쇠퇴했다.
결국 1910년 한일병합 이후 손탁은 조선을 떠났다. 그녀가 이후 러시아로 갔다는 설과 독일로 돌아갔다는 설이 있지만, 이후의 행적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손탁호텔도 결국 사라졌고, 지금은 그 자리에 정동극장과 손탁빌딩이 들어서 있다.
손탁호텔이 남긴 것
손탁호텔은 단순한 숙박시설이 아니라, 조선 개화기의 상징적인 공간이었다. 이곳에서 서양 문화가 조선에 전파되었고, 외국인들과 조선인들이 교류하며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갔다. 또한 한국 커피 문화의 출발점으로도 볼 수 있다.
비록 손탁호텔은 사라졌지만, ‘손탁’이라는 이름은 아직도 서울 정동에서 역사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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