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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History

모스크바 3상 회의 신탁통치

모스크바 3상 회의  

해방 후 소련과 미국은 일본군의 무장 해제를 구실로 38선 이북은 소련이 이남은 미군이 주둔하게 된다.  소련은 김일성을 통한 간접 통치를 시작하게 되고 미국은 군정을 통해 직접 통치를 하게 된다. 그리고 1945년 12월 모스크바에서 미국, 영국, 소련 3국의 외상이 모여 당사자인 우리도 모르는 우리의 미래를 결정짓는 회의를 하고 있었다. 한국 문제를 비롯한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여러 지역의 문제점에 대해 협의하는 회의였다. 

 

1945년 12월 29일 당시 남한에 들어와 있던 미군 측이 서울의 한 거리에서 신탁통치를 한다는 벽보를 보는 사람들의 표정을 찍은 것이다. 

 

 

신탁통치란? 

이 시기 한국 사회는 사회주의 국가를 세울 것인지 자본주의 국가를 세울 것인지에 대한 팽팽한 이념 대립이 있던 시기였다.  당시 미국, 영국, 소련은 한반도의 민중이 스스로 국가 운영을 못한다고 판단하여 일정 기간 선진국이 한 국가의 자립을 정치, 경제적으로 돕겠다는 의미로 식민지는 아니지만 스스로 일어날 수 있도록 선진 국가들이 관리를 자청한 위임통치방식이다. 그리고 그 기간을 5년으로 설정했다.

 

이에 전국 각지에서 신탁통치 반대를 하는 반탁운동이 전개된다.  초창기에는 이념과 관계없이 반탁운동이 전개되었으나  갑자기 좌익 세력이 찬탁으로 돌아서면서 하나로 모여야 목소리가 커지는 대의에서 격렬한 좌우 대립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동아일보 오보 사건으로 신탁통치를 주장한 것은 미국, 즉시 독립을 주장한 건 소련이었는데 이를 동아일보가 반대로 보도했다. 이로 인해 대화 단절로 반공적 정서가 더욱 공고해지게 된다.  

 

▼ 동아일보 오보사건 및 이후 상황 자세히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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