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4월 25일 포르투갈은 정국을 뒤흔든 엄청난 사건이 일어난다.
카네이션 혁명 배경
포르투갈은 1933년부터 에스타두 노부라는 독재 정권 아래에 있었다. 살라자르와 후계자 카에타누가 이끌었던 이 정권은 검열과 비밀 경찰로 국민을 억압했으며, 아프리카 식민지 전쟁에 많은 돈을 쏟아부었다.
- 포르투갈은 이 체제하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오래된 식민 제국 중 하나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아프리카의 앙골라, 모잠비크, 기니비사우 같은 식민지에서 독립을 요구하는 움직임이 강해지고 있었다.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들 식민지에서 독립 전쟁이 발발했고, 이는 포르투갈 정부에 막대한 경제적, 군사적 부담을 안겼지만 독재 정부는 여전히 강경한 식민지 정책을 유지하며 국제사회의 비판을 받고 있었다.
혁명의 도화선: 불만과 저항의 성장
1970년, 살라자르가 건강 문제로 물러난 뒤 그의 후계자인 **마르셀루 카에타누(Marcelo Caetano)**가 권력을 이어받았지만, 체제의 본질은 바뀌지 않았다. 젊은 장교들 사이에서, 특히 식민지 전쟁에 파견된 군인들 사이에서 반독재 및 반전운동이 점점 확산되었고 포르투갈 국민 역시 경제 침체와 국제적 고립 속에서 더 큰 불만을 느끼기 시작했다.
혁명의 진행
1970년대가 되면서 국민들은 억압과 경제적 고통에 지쳐 있었고, 변화를 위한 준비가 갖춰진 상황이었는데 당시 포르투갈은 40여 년 동안 이어온 독재체제와 계속된 식민지와 전쟁으로 인한 반발로 1974년 4월 25일 청년장교들이 쿠데타를 일으켰다.
혁명의 시작은 라디오 방송으로 알려졌다. **"그랜드 올라프의 밤(Grandola, Vila Morena)"**이라는 혁명가가 방송되면서 쿠데타가 시작되었음을 알렸다. 군사들은 리스본 주요 지역을 점령했지만, 시민들에게 총을 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카네이션 여인
포르투갈의 젊은 군인들이 독재 정권에 반기를 들며 거리로 나섰고, 사람들은 그들이 정말로 정권을 바꿀 수 있을지 긴장 속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날, 한 여인이 평범하지만 역사적인 순간을 만들어낸다. 그녀의 이름은 **셀레스트 카에이루(Celeste Caeiro)**로 그녀는 자신이 일하던 식당의 개업 기념일을 축하하기 위해 빨간색과 하얀색 카네이션을 가지고 있었는데 거리에서 군인들을 본 그녀는 즉흥적으로 그들에게 꽃을 나눠주었고 평화의 상징으로 군인들은 이 꽃을 총구에 꽂았고 이 모습을 본 시민들이 합류하면서 거리 전체가 카네이션으로 가득 찼다. 그래서 이 혁명이 카네이션 혁명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카네이션 혁명 이후
결국 카네이션 혁명으로 포르투갈 카에타누 총리는 투항을 하고 정권이 교체된다. 이후 포르투갈은 식민지 권리를 일괄 포기한다. 이후 포르투갈은 민주 헌법을 제정하고 오늘날 유럽연합의 중요한 회원국으로 자리 잡았다. 카네이션 혁명은 비폭력과 평화적인 방법으로도 억압적 체제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희망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한국을 포함한 세계 여러 민주화 운동에 영감을 주었고, 지금도 자유와 정의를 갈망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교훈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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