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녹수죽음 썸네일형 리스트형 장녹수 연산군의 총애를 어떻게 얻었나? 그녀의 최후는? 70 조선 왕조 10대 왕이자 폭군의 대명사 연산군의 후궁이었던 장녹수는 궁궐에 들어오기 전 기생이었다. 기생 장녹수는 어떻게 폭군 연산군의 마음을 얻었을까? 1502년 연산군 8년은 연산군의 폭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기이다. 연산군은 조선팔도 춤, 노래, 미녀를 색출해 궁궐로 불러들여 음주, 가무를 즐기려 했던 것이다. 이런 가무기생들에게 '운평'이라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운평 중에서도 뛰어난 이들을 선별해 '흥청'이라고 불렀다. 장녹수는 운평으로 뽑히는 과정 없이 바로 흥청이 된다. 당시 연산군은 예술에 있어서 누구보다 예민한 눈과 귀를 가진 왕이었기 때문에 타고난 감수성이 풍부했던 연산군은 자신의 시집을 내기도 하고 가면을 쓰고 추는 처용무에도 능했다. 그래서 자기처럼 예술적 기질이 뛰어난 장녹수에게.. 더보기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