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orean History

영조 가계도 : 조선 시대 최장기간 재위, 21대 왕

반응형

영조의 가계는 정실부인에게서 자식이 없었고, 후궁들에게서 얻은 자녀들도 극심한 차별 속에서 성장하였다. 특히 사도세자의 죽음은 조선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사건 중 하나로 남아 있으며, 이후 그의 아들 정조가 즉위하면서 새로운 정치 개혁이 시작되었다. 영조의 가계도는 조선 왕실의 복잡한 권력 구조와 왕실 내 갈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의 가족 관계를 살펴보면, 개인적인 감정이 정치적 선택과 결정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다시금 깨닫게 된다.

 

조선 시대 최장기간 재위 왕 영조 

 

 

재위 기간이 52년인 가장 오랜 기간 재위한 왕이고 검소한 생활 습관에 채식으로 수명도 82세였다. 우리나라 단군이래 두 번째로 오래 산 왕이 영조였다. 첫 번째 고구려 시대의 최장수 (만 98세)+최장기 재위(79년) 기록한 장수왕인데 장수왕과 영조의 공통점은 후계자는 아들이 아닌 손자였다. 

 

👉 영조의 장수비결 보기

 

 

영조는 어떻게 왕이 되었을까? 영조 콤플렉스

영조는 어떻게 왕이 되었을까?  어머니의 신분 때문에 다른 왕들과 달리 성장 환경이 남달랐던 영조는 낮은 신분의 궁녀였던 어머니 숙빈 최씨와 함께 어린 시절 민가에서 살았다.  영조는 왕

jangane.tistory.com

 

영조 가계도

영조 가계도

 

 두 명의 정실부인

  1. 정성왕후 서씨(貞聖王后 徐氏, 1692~1757)
    • 혼인: 1704년 (영조가 연잉군이던 시절)
    • 자녀: 없음
    • 본래 명문가 출신으로 정순한 성품을 가졌으나, 영조와의 관계는 원만하지 않았다. 영조와의 첫날밤, 영조는 정성왕후의 손을 잡고 "손이 참 곱소."라고 감탄하였다. 이에 정성왕후가 "힘든 일을 하지 않아 그렇습니다."라고 답하자, 영조는 순간 표정이 굳어졌다. 영조는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다가 "무수리 출신의 어머니를 둔 나를 조롱하는 것이오?"라고 반문했다. 정성왕후는 당황하며 "그런 뜻이 아니옵니다."라고 해명했지만, 영조의 마음은 이미 닫혀버렸다. 이후에도 두 사람의 관계는 소원했고, 정성왕후는 1757년 66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2. 정순왕후 김씨(貞純王后 金氏, 1745~1805)
    • 혼인: 1759년 (영조 66세, 정순왕후 15세)
    • 자녀: 없음
    • 혼인 당시 나이 차이가 51세로 매우 컸으며, 영조의 만년에 왕비가 되어 남편의 건강을 돌보았다. 1800년 정조가 승하한 후 순조가 즉위하면서 수렴청정을 하며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정순왕후 김씨 (영조의 15세 계비 정조와 사이가 좋지 않던 이유는? )

조선 21대 왕 영조의 계비정순왕후영조의 첫번째 왕비 정성왕후 서씨(1692~1757)는 53년 해로하다가  1757년에 정성왕후가 후사 없이 승하한다. 이때 영조의 나이 64살이었다. 3년상을 마치자 영조는

jangane.tistory.com

 

영조의 후궁과 자녀

정실 부인에게서는 자식이 없고 후궁에게 얻은 자식이 2남 12녀로 그 중에 5명의 딸은 어려서 죽고 7명의 딸은 결혼하여 영조는 사위를 얻었다. 영조와 정빈 이씨 사이의 첫 번째 아들 효장 세자는 10세의 나이로 요절하고 그 뒤 영조 나이 42세 때 영빈 이씨 사이에서 낳은 두 번째 아들이 사도 세자 '이선' 이다.  

1. 정빈 이씨(靖嬪 李氏, ?~1735)

  • 효장세자(孝章世子, 1719~1728): 영조의 첫 번째 아들로 세자에 책봉되었으나, 10세의 어린 나이에 홍역으로 요절했다. 그의 사망 이후 영조는 후계 문제에 큰 고민을 하게 되었다.
  • 화평옹주(和平翁主, 1727~1748): 남편은 신만(申晩). 비교적 온화한 성격으로 알려졌으며, 21세의 나이로 요절하였다.

2. 영빈 이씨(暎嬪 李氏, 1696~1764)

  • 사도세자(思悼世子, 1735~1762): 효장 세자가 죽고 7년 뒤 사도세자는 영조나이 42세때 얻은 귀한 아들이었다. 본명 ‘이선(李愃)’, 영조와의 갈등으로 인해 1762년 뒤주에 갇혀 비극적인 죽음을 맞았다. 정조의 아버지이며, 이후 추존되어 장조로 칭해졌다.

 

 

창경궁 속 사도세자의 죽음 (영화 사도의 임오화변 이야기)

[선을 넘는 녀석들 리턴즈 35,36회] 오늘의 탐사지:  창경궁 (춘당지-경춘천-문정전)주제: 창경궁 속 사도세자 이야기출연자: 설민석 , 김강훈, 로운 창경궁        1762년의 비극 임오화변

jangane.tistory.com

 

  • 화협옹주(和協翁主, 1733~1752): 남편은 정재화(鄭在和). 영조는 그녀를 극도로 싫어했으며, 이는 그녀가 태어났을 당시 영조가 아들을 간절히 원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19세의 나이에 병으로 사망하였다.
  • 화완옹주(和緩翁主, 1738~1808): 남편은 정제원(鄭齊遠). 영조가 가장 총애한 딸로, 사후에도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특히 정조 사후, 정순왕후와 함께 반정 세력을 지원하는 역할을 하였다.
  • 화령옹주(和寧翁主, 1752~1821): 남편은 김기성(金箕性). 상대적으로 조용한 삶을 살았으며, 순조 시대까지 생존하였다.

영조의 자식 차별

영조는 후궁들의 자녀 중에서도 차별이 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영빈 이씨가 낳은 화협옹주와 사도세자를 극도로 미워한 반면, 화완옹주와 화평옹주는 무척 아꼈다. 이는 화협옹주가 태어날 당시 영조가 아들을 간절히 바라던 상황에서 또다시 딸이 태어났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사도세자는 아버지 영조와의 갈등 끝에 결국 사망하였다. 반면 화완옹주는 영조에게서 특별한 애정을 받았고, 이는 그녀가 정치적으로도 중요한 인물이 되는 데 영향을 미쳤다.

 

 

영조 가계도 및 업적 /청계천 유래 / 수표교 [선을 넘는 녀석들 리턴즈 35회,36회]

[선을 넘는 녀석들 리턴즈 35,36회] 오늘의 탐사지: 장충단 공원의 수표교주제: 영조의 업적출연자: 설민석 , 김강훈, 로운 조선 시대 최장기간 재위 왕 영조  재위 기간이 52년인 가장 오랜 기

jangane.tistory.com

 

반응형